만화제 晩華齊

‘서사敍事’적 풍경

만화제의 구상은 2017년 봄, 한동대에서 2년 후 정년을 앞 둔 한 교수님의 메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유학과 해외에서의 교수생활, 귀국 후 포항 한동대에서의 교직 까지 27년간의 외지 생활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귀향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 후 함께 방문한 이천 원두리의 옛집은 오래전 그와 형제들이 모두 이곳을 떠난 뒤 다른 사람이 거주한 후 한동안 빈집으로 남아 있어 삶의 흔적은 단절되어 보였다. 자연스럽게 과거를 거슬러 마을과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마을은 신작로를 경계로 커다란 삼각형을 이루고, 삼각형 중점에 해당하는 위치에 낮은 언덕을 배경으로 그의 옛집이 있었다. 그는 지금은 경작지가 되어버린 상수리나무 언덕과 저수지, 저수지길을 따라 줄지어 서 있던 히말라야시더가 있는 마을의 풍경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 했다. 주변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있던 이 집의 안채는 그의 분석에 의하면 200년이 넘었다. 안으로는 중정을 이루고 밖으로는 널따란 바깥마당을 둔 긴 사랑채는 안채와 더불어 ‘ㄷ’자를 이루고 서쪽에 부속채를 둔 배치는 북서쪽을 열어두는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다. 북서쪽 경계에는 커다란 회화나무가 자리하고 있는데 시기는 알수 없지만 이 나무의 위치와 관계있지 않나 생각된다. 각각 지어진 시기를 달리하는 안채와 사랑채, 부속채는 큰 규모를 이루지만, 느슨한 중정을 감싸는 집합의 형태로 마을의 일부로 작동한다. 건축주는 지금은 훼손된 언덕과 길에 대한 풍경의 회복과 오래된 안채의 재생에 대한 조심스러운 속내를 내 비췄다.

느슨한 중정주택

오래전 많은 가족과 이웃들로 북적였을 옛집으로부터 두 사람만을 위한 거주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은 과감하게 밀도를 들어내는 일을 전제로 한다. 낮은 밀도의 건축과 최소한의 장치만으로 느슨한 중정의 공간구조를 재현하며, 과거처럼 동네 풍경의 일부가 되게 하는 건축은 무엇인가 고민했다. 200년 된 안채는 예산을 고려, 현대적인 공법을 병행해 재생한다. 동서로 긴 사랑채는 목재의 부후가 심해 해체하고, 두 개의 작은 방을 갖는 서재와 대문을 경계로 주차장을 두어 채를 나누었다. 외부에서 보면 독립된 건물처럼 보이는 주차동은 안을 향해 열려있다. 주 마감재인 스터코와 대비되는 목재 표면을 가지고 있어 안채, 서재동과 대비 된다. 집을 이루는 혼성적인 성격의 채들은 마을에서 이질감보다는 일부로 작동하도록 의도된 것이다. 서재동은 과거 바깥마당과의 관계를 복원해 기단을 두고, 툇마루처럼 들어 올려져 있다. 서쪽에 면한 부속채는 지붕과 안쪽 벽은 드러내고 외곽 벽을 유지해 길에서 보면 마치 과거의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듯 보이고자 했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편 비스듬히 회화나무가 시야에 들어온다.

200년 된 한옥의 현대적인 재생

해체 과정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건립연도를 확인하지 못했으나, 건축주의 분석에 의하면 안채의 나이는 200년 내외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한옥의 모듈은 규칙적이지 않는데 비해 만화재 안채의 기둥 모듈은 엄정하다. 예산 추사고택의 모듈이 그러한데 조선 후기의 형식화되는 성리학의 영향으로 여겨진다. 주인의 세계관이 담긴 집의 격을 잘 드러내는 특징이다. 새마을 운동 당시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고, 오랫동안 관리를 소홀히한 탓에 서까레는 대부분 재생이 어려워 보였다. 기둥과 보를 이루는 고재의 테스트 결과 일부만 교체해도 될 정도의 내구성을 보였다.

옛 한옥의 보존과 재생 사이에서 예산과 성능 등을 고려한 새로운 제안을 했다. 현대적인 공법의 외피와 재생한 한옥의 기둥과 보 구조의 조합은 자유로운 평면을 갖는다. 안채를 해체해 본래의 위치를 기억할 수 있도록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최대한 본래의 위치에 재배치하되 손상되거나 부족하면 덧대어 연결했다. 재생이 불가능한 기둥, 보는 집성목(Glulam)으로 대체 되었다. 외피는 경골목구조시스템 피막을 적용했다. 두 구법의 경계에는 안쪽에 노출된 서까레(Rafter)인데 부정형한 형태의 한옥 보와 연결하는 데는 도리를 매개로 애매함을 조정하였다.